아우라는 실력보다 정확한 인식에서 온다
어떤 사람에게서 “뭘 좀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꼭 대단한 결과물을 보여줘서만은 아니다. 말을 많이 해서도 아니고, 압도적인 지식을 쏟아내서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짧은 순간에, 내가 스스로도 정확히 말하지 못했던 빈칸을 상대가 짚어낼 때 그런 감각이 생긴다.
그날의 대화는 오래전 첫 만남을 다시 복기하는 데서 시작했다. 한 지인은 그때 자신이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을 열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겪은 학습 방식과 경험을 학교 안에서도 나눌 수 있을지 궁금했고, 마침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그때 무엇을 잘했을까 생각했다. 특별한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이미 쌓인 신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인은 내가 던진 질문들이 적절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하던 것을 직접 맞힌다기보다, 정말 궁금해할 법한 지점을 물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잘 전달해주고 싶어졌다고 했다.
좋은 질문은 상대를 설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기 자신을 더 분명하게 보게 만든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그제야 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어디에 자신이 있었는지, 어디가 아직 애매했는지. 질문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먼저 알아본다.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한다.
대화 중에 한 가지 장면이 오래 남았다. 지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미래가 조금 애매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지점을 언급했을 때, “이 사람이 뭘 좀 아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말이 흥미로웠다. 상대의 강점을 칭찬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도 개연성이 약하다고 느끼던 부분을 알아봤기 때문에 신뢰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종종 영향력을 실력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무언가를 압도적으로 잘해야 하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한눈에 따라가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실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첫 순간의 신뢰는 때로 실력의 총량보다 인식의 정확도에서 온다. 이 사람이 나를 대충 본 것이 아니라는 감각. 내가 공들여 깎아둔 부분과, 아직 덜 이어진 부분을 동시에 알아본다는 감각.
그 감각이 생기면 사람은 조금 더 말하게 된다. 더 잘 설명하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것을 꺼내도 되겠다고 느낀다. 그래서 관계의 시작에는 설득보다 관찰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보다, 상대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것을 얼마나 정확히 볼 것인가가 먼저다.
대화에서는 장난스럽게 “계몽”이라는 단어도 오갔다. 누군가를 바꾸고, 깨닫게 하고, 새로운 것을 보게 만든다는 뜻으로 쓰인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단어가 조금 어색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를 위에서 아래로 끌어내리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조하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서로가 가진 것을 알아보고, 그 알아봄 때문에 각자 조금씩 달라지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아우라 같은 것일 수 있다. 다만 그 아우라는 신비로운 분위기나 타고난 카리스마가 아니다. 상대의 말과 선택과 자기소개 속에서, 그 사람이 어디에 힘을 주고 있는지 알아보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직 스스로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대신 완성해주지 않고, 다만 그 문장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바라봐주는 태도다.
나는 앞으로도 좋은 질문을 하고 싶다. 상대를 시험하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가 더 말하고 싶어지는 질문. 내 지식을 증명하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의 결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질문. 그런 질문이 쌓이면 누군가는 그것을 실력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내공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아우라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름은 조금 다르다. 정확히 알아보는 일. 그리고 알아본 것을 너무 성급히 소유하지 않는 일.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의 힘은 어쩌면 거기에서 온다.